top of page

날, 아주 먼 옛날 내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저 바보처럼 웃으며 그들과 행복하기를 바랬던 날이 있다.

 

이제는 그저 바래진 기억일 뿐이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때를 생각하면ㅡ 심장이 옥죄어와. 

 

누구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우면서도 그 어떤 이들보다 강한 형.

 

내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자 내가 유일 존경하면서도 질투하는 인물.

 

이런 추악한 나를 본 그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듣고싶지 않아 눈과 귀를 가리고 필사적으로 나를 부르는 그 외침을 외면하면서도ㅡ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내 자신의 나약함을 덮어버리기위한 작은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며 내 자신의 한심함을 스스로 합리화시킨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도, 그 고통은 절대 잊혀지지 않아. 그저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묻어두며 무뎌지고 잊었다고 착각할 뿐이지. 스스로가 잊었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다시 꺼내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곪아버린 상태로 끝을 맞이하겠지. 어둠이 꾸물꾸물 새어나와 종내에는 그 종자를 집어삼켜 이성을 잃고 말 것이라면, 지금의 내가 부탁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부디 그에게, 내게 남은 유일한 빛에게 그 부탁을 약조받는다면 부디 그 검의 끝을 내게 향하게해준다고, 그 검의 끝으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내 심장을 꿰뚫어주겠다고.

 

그 종내가 찾아온다면 형은 과연 나를 위해 울어줄까?

 

그 강인하던 형이, 어머니를 죽이고 혼자 살아남아버린 나를 위해서 울어줄까?

 

만약 내가 어머니가 죽인 것을 모르는 그라면 기꺼이 그 죽음에 슬퍼하고,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고ㅡ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된 그라면 어머니를 향해 더한 고통을 주지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앞으로 나아가겠지.

 

누구보다도 찬란하고, 고귀하며 우아한 기품을 가진 형이여.

 

분명 형이라면 이전까지와는 다른 마족들의 세계를 보여주겠지.

 

나는 결코 해내지도 보지도 못할 풍경을 그들은 보게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질투한 추악하고도 차가운 밑바닥의 인물. 그저 약하다는 이유로 도태되었기에 강함을 바랬던 나와는 다르게, 단 하나의 티끌없는 길을 걷게될 형에게 더러운 피라도 묻혀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도 이제는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하겠어. 다만 확실한 것은 형은 예전과 같지만 여전히 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보다 약하다는 것.

 

결국 이 지독한 운명은 바뀔 수 없던거야. 왜 이제야 이것을 깨달은 것인지. 사실 그저 질투에 눈이 멀어 보이지 않던 것일 뿐인지도 모르지.

 

“데미안....?”

 

형이 내게 흔들리고, 내게 고통받는 이 순간 가슴 속에 찌르르하게 울렸던 두가지의 감정. 당연하게도 살아남은 그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에 대한 기쁨과 검은 마법사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살아있는 그의 강함을 향한 질투.

 

“살아있었구나!”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다르게 형은 그저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듯, 내 썩어빠진 내면은 전혀 보지 못한채 안도감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 털어놓아도 화를 내지도 않았으며 군단장이 된 것을 안타까워했을 뿐이지.

 

“...너도, 나도, 과거의 족쇄에 사로잡혀 있는 건 마찬가지였구나.”

 

그런 형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거야. 과거의 족쇄? 아니, 이건 족쇄가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문제지. 그것을 위해서 어떤 과오를 저지를지라도 종내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룰 수만 있다면.

 

“다시 이쪽으로 와, 형. 나와 함께 싸우자! 바보같은 인간들과 어울리는 건 그만둬. 엄마도 살려내고, 마족들의 세상도 만들어내는거야!”

 

있잖아, 형.

 

인간들은 보통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매달리고, 그것에 희망을 느끼며 종내에 그것이 모두 무너졌을 때 세상이 무너진 것같은 행동을 취해. 본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절망할 것을 알면서도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꿈 그것을 흔히 황량몽이라 표현하지. 하지만 그건 힘없는 인간들의 이야기일뿐.

 

검은 마법사의 힘, 쓰레기와 같이 나약했던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그 힘만 있다면 이뤄질 수 없는 꿈은 없어. 달콤한 꿈을 한 순간으로 만족해야하는 예전의 나같은 그 나약한 인간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승리하게 될거야.

 

“그만둬야 할 건 너야, 데미안.”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형.

 

전장에서 화려한 붉은 꽃을 피워내던, 검은 군단장의 수하로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했던 형이ㅡ

 

결국 마스테리아로 마족들을 쫓아낸 원흉인 형이

 

“이건 내 싸움이야. 형은 이 전쟁에 관여하지 마.”

 

나에 대한 죄책감, 지키지 못한 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감정을 물들여. 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지ㅡ 스스로를 짓누르고, 모든 원망을 자신에게로 돌리려하고 노력하고 있는 형을 보고 있자하면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런다고 결코 예전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해. 우리들의 감정의 골은 깊을대로 깊어졌고 내가 지금 이렇게 발악하는 이유는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

 

설령 진실로 어머니가 깨어난다한들 나는 순수히 기뻐할 수 있을까. 예전과는 다른 나, 점점 의미를 잃어버려가는 나. 그렇기에 이렇게 되기 전에 나를 형이 멈춰주길 바랬어.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이 깊은 어둠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 말할 시간은 남아있겠지.

 

내 선택은 옳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힘을 갈구하며 사는 지금이 이리 괴로운 것은 후회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분명 부모님들 중 한명만이 살아계시고, 유복하지 않았던 세명이서 살던 시절도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고. 그랬던 우리들을 망친 것은 아주 작은 욕망으로 비롯되었겠지. 그 작은 욕망은 불어나 질투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탐욕이 되고, 결국에는 몸을 좀먹어가 모든 것을 망쳤지.

 

“집에 가자, 데미안.”

 

나는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다음 생에 우리가 지금보다 평화롭고 차별없는 세계에서 태어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 울지마, 형.

@neoriha, 하이넬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