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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ycle world

 

리는 사이좋은 형제였다. 작은 빵 하나도 나누어먹었고, 어머니께 혼이 날 때도 서로를 격려하며 감싸주곤 했다. 평화로운 일상은, 계속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족이 침략을 당했으며. 우리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른 길을 걷기 전까지만 해도.

영원의 세계를. 마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형.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없어. 마족의 긍지를 꺾어서라도 살아남고 싶다니. 어이가 없어. 우리는 나약하게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나약하지도 않아. 나약하게 죽지도 않을 거야. 우리는 이렇게 잘 살아왔잖아. 허무하게 무너질 수는 없어.

“루프의 세계를 창조할거야. 형은, 형이 원하는 길을 걸어. 마족의 긍지를 지켜줘.”

“데미안, 그건 위험해. 내가 다시 돌아온 다해도, 널 만날 수 있을지 알수없단말야. 데미안, 다시 한 번만 생각해줘…. 데미안!!”

“난, 마족의 긍지를 지켜낼 거야. 어머니를 살려낼 거야. 말리지 마, 형.”

 

0의 세계. 무한 루프의 세계. 도달할 수 없었고, 여태까지 존재를 알수없었다. 나는 창조해냈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행복한 세상을. 어렴풋이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그 세계에서 행복하니, 데미안? 행복해. 행복한 게 당연하잖아. 행복한 세상인 걸? 형 이것 봐. 내가 드디어 만들어냈어.

“……. 나는, 행복해?”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보던 주마등같던 세계와는 달리 새하얀 공백만이 가득했다. 바닥을 쳐다봐도, 하늘을 올려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곳의 자그마한 먼지일 뿐이었다. 내가 이 세계를 만들었잖아. 내가 관리자인거잖아. 어째서 나는 이 세계에서도 행복이란 걸 찾을 수 없는 거야?

 

어느 겨울날 이였다. 형과 나는 눈사람을 만들며 웃고 있었다. 이것도,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가는 기억일뿐이지? 이럴 거면 차라리 없어지면 좋겠다며 중얼거렸다.

“응? 데미안, 뭐라고?”

형의 목소리. 온기. 너무나 생생해서 자그마한 손바닥에 눈물이 두둑, 하곤 떨어졌다. 어째서 울고 있어 데미안? 붉은 머플러의 온기가 식어버릴 것 만 같아. 떠나지 말아줘,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줘. 형은 이해하지 못 했겠지만 언젠가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길.

집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었지. 형은 여기에 남아 있어줘. 내가 한번 보고 올게. 뒤에서부터 날아온 화살이 심장을 꿰뚫었다. 고통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건, 형이었으니까.]

 

하얀빛이 나를 반겼다. 하늘의 푸른빛이 눈에 담겼고, 익숙한 목소리와 맛있는 냄새가 잠을 깨웠다. 일어나렴, 데미안. 분명 죽어버렸을 터인 어머니가 내 이름을 다정히 불러왔다.

“당신 누구야. 어머니는 없어, 죽었다고! 솔직히 말해봐. 넌 가짜지? 나를 속이려고, 농락하려고 이러는 거지? 내가 나약하다고 불리는 마족이었기 때문에. 혼자 현실을 도피하려했기에 그러는 거지?”

쨍그랑, 접시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 파편을 즈려밟아 생겨버린 상처. 검붉은 혈액. 눈 앞에 있는 것은 죽어버린 나의 가족, 동료. 우리 마족들.

“어, 어째서? 어째서 모두……. 모두, 죽어버린 거야? 살아있었잖아. 모두 이곳에 있었잖아.”

허공에 손을 아무리 휘저어보아도 잡히는 것은 차가운 공기뿐. 이마저도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홀로 남은 세계. 홀로 남은 마족.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지금이 되는 것인가.

“차라리, 죽여줘.”

 

이 잔인한 세계는 또 밝아왔다. 내가 없어진 세계의 폐허를 지켜보고 있었다. 살아남아있었던거야? 형은. 마족들을 돕지 않고 저 애송이들을 돕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마족이 아닌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고, 눈물을 흘리고. 웃어주는거야. 나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웃음을 보여준적 없으면서. 그곳에서 날 보고 있다면 웃어줘. 내 이름을 불러줘, 눈물을 보여줘. 그 손길로 나를 날카롭게 상처내줘.

“왜, 만날 수 없는거야 형.”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다. 그 누구도 오지 않는 공허한 세계. 소년의 공상이 만들어낸, 허무한 공간. 그 끝은 알 수 없었다. 세계의 주인이 구속당한 무질서한 세계에 얽매여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저기, 살고 싶어?]

금발의 소녀가 소년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살고.. 싶어. 난, 형을 만날거야.]

그렇다면, 내 손을 잡아.

 

우리들은 나약하게 태어났으나, 나약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소년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남아있는 마족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데미안님.”

그가 세계수를 오르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 역시 반복되고 있는 허상이 아닐까. 유리속의 소녀가 그를 바라봤다.

‘가여운 아이.’

형을 만났다. 그렇지만, 닿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뿐.

“나를 죽여줘, 형. 그 손으로 날 자유롭게 만들어줘.”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몇 번째 반복되는 걸까. 그래도, 형의 품에 안겨. 옛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큼 기쁜 것이 어디있는 것인가.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금세 터져버릴것만같은 석양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맙다, 세계수.’

하늘이 몇 번이나 바뀌고, 형은 저편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어느새 나의 세계의 하늘은 새하얀 순백을 되찾았다. 하늘은 언제 바뀌는 걸까? 중얼거렸다. 토각, 토각 구두소리. 금발의 소녀는 오늘도 찾아와 붉은 눈동자를 빛냈다. 온화한 목소리. 달콤한 속삭임. 악마의 계약.

[하늘을 바꾸고 싶다면 내 손을 잡으렴, 아가.]

@chunrang_263, 천랑술, 카케프로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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